Air Force Logistics Command 21세기 공군 군수지원을 위해 최상의 군수지원 태세 확립

전장에서의 군수

“전장에서의 군수’는
단기속결전, 소모전, 물량전으로 대변되는 현대전은 종래 잠재적
군사력 비축 보다는 현재 적 군사력의 배양이 요구될 만큼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는 군수전 수행능력을 강력히 필요로 하고있다.
군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향은 과거의 전쟁경험을 통해
축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산업혁명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전쟁에서
군수가 어떤 역할을 수행해 왔는지 알아보자.

산업혁명 이후 시대

「나폴레옹」시대까지만 해도는 전승의 주요원인은 ‘용병술’차원에서 결정되었으나 산업혁명 이후 강선식 소총의 발명, 철도 및 전보의 발달을 통한 대량물자 보급능력 구비로 ‘군수’가 전쟁의 결정적 승패 요인으로 부각되었다. 최초의 사례는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볼 수 있다. 당시 북부의 전쟁물자 생산능력과 철도, 증기기관을 이용한 수송능력을 통해 충분한 물자와 병력을 전개할 수 있었던 북군의 Grant 장군은 용병술의 대가인 남군의 Lee장군이나 Jackson 장군을 물리쳐 승리로 이끌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은 전 세계적으로 발발한 전쟁이었으며 보급품, 식량, 탄약이 전 세계를 통해서 일선부대에 제공되었기 때문에 군수는 군사작전에 있어서 절대적인 부분이었다. 이 기간 중 주목할 만한 군수활동으로는 항구시설이 없었던 노르망디에 6개월 만에 항구를 건설함으로써 성공적인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원한 것과 프랑스를 횡단하는 군의 보급지원을 위해 Red Combat Loader, 상륙함정, 수륙양용차의 개발과 운반, 항공기 견인,소형 불도저, 환자후송 등 다목적으로 활용된 지프의 개발 그리고 의무분야에서 육군 이동외과 병원(MASH)의 창설과 이를 지원하는 병원선박의 발전, 상륙전차의 개발 등을 이끌어 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미 · 영 연합군은 고립된 서베를린 시민을 구하기 위해 702대의 항공기로 275,000 쏘티를 수행하여 1년 동안 총 230만 톤의 보급품을 수송하는 베를린 공수작전을 수행했다. 이 작전을 통해 국가전략 구현에 있어 공수능력의 중요성과 대형 수송기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군수전문가들이 이뤄낸 혁신은 임무완성도와 업무의 용이성을 증가시켰으며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한국전쟁

한국전에서의 군수는 미국의 공중수송 능력 발전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군은 베를린공수에서의 경험을 한국전에서의 장거리 항공보급에 이용하였으며 당시 부족했던 군항공 수송지원(MATS : Military Air Transport Service)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민간 항공기를 이용하여 승객과 화물공수 임무를 전담하는 민간예비항공대(CRAF : Civil Reserve Air Fleet)를 창설하게 된다. 의무분야에서는 MATS를 통해 66,000명 이상의 환자를 미국으로 수송하였으며 환자 후송을 위해 최초로 헬기가 사용되었다. 한국전에서는 또한 현지에서 직접 고용한 인부들이 향만이나 창 건설, 수송작전 등에 참여 하거나 지원함으로써 주둔국 지원 개념이 최초로 사용되기도 했다.

베트남 전쟁

베트남 전쟁은 대부분 정치, 폭력, 제트폭격기의 전쟁으로 기억되기도 하지만 훈련된 군수전문가들이 활약한 최초의 전쟁이기도 하다. 군수전문가들은 최초로 컴퓨터를 사용한 표준 기본 보급체계를 구축하여 보급지원에 활용 하였고 전쟁예비부품 키트인 WRSK(War Readiness Spares Kit)가 바로 베트남전을 통해 고안되어 정상적인 보급체계 구축 전까지의 초기지원을 수행했다. 공병분야에서는 민간 기술자들이 주축이 되어 격납고, 급수 및 하수도 체계의 건설과 폭격피해를 받은 공군 기지 긴급복구 임무의 특수목적의 부대를 창설, 운영하기도 했다. 수송분야의 경우 2차대전 시의 Red Ball Express 개념을 적용한 수리부속 공수작전으로 컨테이너 및 하역능력의 발전을 가져왔다. 베트남전을 통해 보급, 수송, 정비, 공병분야에서 이뤄진 군수혁신은 사전비축(Prepositioning)과 LOTS(Logistics Over the Shore) 작전의 개념을 탄생시켰고 이것은 70년대 후반의 해군사전 비축선단(MPS : maritime Prepositioning Ship)의 탄생을 가져오기도 한다.

걸프전

걸프전은 ’91년 1월 대규모 공습 이후 이라크가 항복하기까지 전쟁준비 약 6개월, 공중전역 38일,지상전 100시간 만에 끝났으며 철수작전(Desert Farewell)은 8개월이 소요된 완벽한 ‘군수전’이었다. 즉 43일을 위해 군수는 18개월을 싸웠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미국과 유럽지역에서 걸프만에 전개한 수송량의 규모와 속도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불과 6개월 사이에 인원 504,000명, 화물 370만톤, 유류 610만톤을 수송함으로써 군수의 기적을 이뤄냈다.
걸프전에서의 군수는 전쟁준비 시 20명의 군수전문요원으로 구성된 군수기획단(Log Cell)을 조직하여 중장기 기획임무를 지휘하도록 했다. 군수능력 강화를 위해 전구 당 한명의 사령관만을 임명하여 일관된 군수지휘체계를 유지하였고 1일 군수상황정보(SITREP) 보고제도와 35인치 카드시스템 도입을 통해 사령부 내의 신속한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체계의 개선을 가져왔다. 또한 지상군의 적진으로 이동 시 군수기지도 동시에 이동하는 전방이동 군수기지(FOB : Forward Operaling Base) 개념이 창안되었다. 미 해병대 제2지원군 사령관인 Krulak 장군은 “10년 후에 역사가나 전략가가 걸프전을 연구한다면 그들이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은 바로 군수다. 걸프전은 군수전” 이라고 말할 정도로 걸프전은 군수의 중요성이 여실이 드러난 전쟁이라고 불 수 있다.

이라크전

이라크전에서의 군수는 ’91년도 걸프전 당시의 물자수송기간을 평균 8일에서 40시간을 대폭 단축시킴으로써 물량 중심의 군수지원 체계를 속도중심으로 전환시켰다. 또한, 적시지원(JIT : Just In Time) 개념을 도입하여 군수물자 이동 시 창고보관 과정을 생략하고 소요 발생 시 사용자에게 직접 ‘One Stop’으로 추진 보급하는 체제를 구축하였다. 기존의 물자추적시스템을 보완, 발전시킨 물자인식 시스템을 도입하여 고장부품 발생 시 위치파악은 물론 수송자산의 움직임을 실시간 추적하여 신속한 지원이 가능하게 함으로써 보유자산 가시화(TAV : Total Asset Visibility)를 도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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